자문 중인 회사의 계약서 검토 건과 관련하여,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독일에 출장을 다녀왔다. 계약서 검토 업무가 일단락된 이후에는, 그간의 긴장을 풀고 인근 도시들을 방문하여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여유도 가질 수 있었다. 그 기간에 특히 뉘른베르크에서 비교적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이번 기고문에서는 법리적인 문제들을 떠나 이때 느낀 점들을 함께하고자 한다.
출장 업무를 마치고 짧은 여유를 가지게 된 입장에서, 뉘른베르크에 대한 첫인상은 중세의 모습이 잘 보존된 아름다운 도시일 뿐이었다. 구시가를 둘러싼 웅장한 성벽, 독특한 모습의 성모교회와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거대한 성 로렌츠 교회, 구시가를 유유히 흐르는 페그니츠 강변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날씨와 함께 그간의 피로를 잊게 해주었다. 그렇게 망중한을 즐기는 동안 귀국일이 다가오자, 이제는 남은 시간 동안 무언가 의미 있는 기억을 남기고 여행을 마무리하고픈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찾아가게 된 곳이 뉘른베르크 중앙역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체펠린 비행장과 인근의 나치 전당대회장이었다. 뉘른베르크는 나치의 전당대회가 오랜 기간 열린 장소인 데다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연합군이 나치의 전쟁지도자에 대한 국제군사재판을 진행한 곳이어서 역사적⦁국제법적으로 의미가 깊은 곳인데, 그 현장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먼저 찾아간 체펠린 비행장은 체펠린의 비행선이 착륙한 곳에 건설된 거대한 연단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거대한 규모에 압도될 수밖에 없었는데, 연단 옆에 설치된 안내문에 따르면 페르가몬의 고대 제단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한다. 전쟁 당시 폭격으로 인하여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으나, 1938년 당시의 사진을 통해 과거의 웅장하고 압도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일부분만으로도 한 시대를 휩쓸었던 거대한 광기를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었는데,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운 모습이 오히려 묘한 여운을 남기는 곳이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미완성의 거대한 나치 전당대회장과 그곳에 자리한 기록의 전당이었다. 체펠린 비행장에서도 큰 호수를 사이에 두고 저 멀리 콜로세움과 같은 새하얀 모습의 거대한 전당대회장을 볼 수 있다. 워낙에 큰 규모로 건설된 곳이라 마치 화면을 합성한 것과 같이 신기루처럼 손에 잡힐 듯한 그곳은, 가까운 듯하면서도 한참을 걸어가야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잠시 길을 잃고 헤맨 탓에 기록의 전당 입장시간은 이미 지나버린 뒤였고, 거대한 미완성의 전당대회장을 볼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해야 했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검색을 통해 찾아본 기록의 전당에서는, 나치 관련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어 후세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었다. 부끄러운 과거의 흔적을 그대로 활용하여 역사의 교훈으로 삼고 있는 독일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출장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왔는데, 최근 과거사 문제로 촉발된 대한민국과 일본 간의 신경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도무지 종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문득 뉘른베르크에서 돌아본 위 현장들과 함께, 역시 뉘른베르크에서 찾았던 국립 게르만 박물관의 정문 앞에 조성된 ‘인권의 길’을 떠올리게 된다.
여기에는 8m 높이의 원형 기둥 30개가 일렬로 늘어서 있고, 각 기둥에는 UN 세계인권선언 전체 30개 조항이 독일어와 서로 다른 총 30개 국가의 언어로 적혀 있다. 특히 제1조는 독일어와 함께 유대인의 언어로 적혀 있다. 나치 최대의 희생양이었던 유대인의 언어를 가장 먼저 새김으로써 불행한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 아니었을까.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모든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에게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UN 세계인권선언 제1조의 내용이다. 부끄러운 과거라 하여 의도적으로 이를 부인하고 외면한다면, 고통받았던 그 이웃들로부터 형제로 대접받을 수 있을까. 오랜 역사의 굴곡을 지나 서로를 진정한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할 수 있는 그 날은 과연 언제쯤 올 수 있을지 문득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울산 변호사] 고래 법률사무소 변호사 류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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